[간호소식] 간협, 6.25전쟁에 간호사 파견한 ‘노르웨이’에 감사패
- 2020.07.29
- 작성자 : 중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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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협, 6.25전쟁에 간호사 파견한 ‘노르웨이’에 감사패
이동외과병원 ‘노르매쉬’ 간호사 133명 파견 --- 동두천 최전방에서 부상병 간호에 헌
[편집국] 정규숙 편집국장 kschung@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20-07-28 오후 06:50:49
신경림 간호협회장, 수올베르그 주한노르웨이대사 방문
6.25전쟁 70주년 맞아 의료지원단 파견 6개국에 감사패 전달 예정
대한간호협회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당시 한국에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지원단을 파견했던 6개국에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각국 대사를 한자리에 초청하는 대신 주한대사관을 방문해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감사패는 2가지로 해당 국가 및 간호협회에 전달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노르웨이에 대한 감사패를 7월 28일 전달했다. 노르웨이는 전쟁을 겪고 있는 한국을 돕기 위해 육군 이동외과병원 노르매쉬(NORMASH) 의료진을 파견했다. 노르매쉬는 1951년 7월 19일부터 1954년 11월 10일까지 활동했으며, 군인과 민간인 환자 9만명 이상을 치료했다. 간호사는 총 133명(여자 111명·남자 22명)이 파견됐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은 주한노르웨이대사관을 방문해 프로데 수올베르그(Frode Solberg·사진 오른쪽) 대사에게 감사패를 전했다.
신경림 회장은 “6.25전쟁 당시 한국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했던 숭고한 인류애를 기억하고 보답하기 위해 감사패를 드리는 자리를 마련했다”면서 “파견됐던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들의 용기와 헌신에 마음 깊이 감사드리며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한국 간호역사에서 6.25전쟁 의료지원국 간호사들의 활약 부분을 재조명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경림 회장은 “노르매쉬에서 활약했던 간호사 게르드 셈(Gerd Semb)이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노르웨이를 국빈 방문했을 때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만난 자리에 초청되면서 한국과 노르웨이 간호협회의 인연도 더욱 가까워졌다”면서 “앞으로 노르웨이간호협회와 학술·문화적 교류를 활발히 이어나가고, 특히 고령사회 커뮤니티케어 등에 대해 벤치마킹하며 함께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데 수올베르그 대사는 “지난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신 데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대한간호협회에서 직접 감사패를 마련해줘서 고맙고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에서 시작된 한국과 노르웨이의 인연은 오늘날 중요한 파트너국으로 발전하면서 더욱 돈독해졌고, 다양한 경제협력을 이어나가고 있다”면서 “앞으로 양국 간호협회가 활발히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간호분야의 공동 관심사를 논의해 나가길 바라며,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지난해 양국 수교 60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노르웨이를 국빈 방문해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만났던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면서 “유엔군의 6.25전쟁 참전 등 한국을 지원하는 결정을 내릴 당시 유엔 초대 사무총장이었던 트뤼그베 리(Trygve Lie)가 노르웨이인이라는 특별한 인연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당시 파견됐던 노르웨이인들은 한국의 놀라운 발전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데 큰 보람을 느꼈다”고 전했다. 한편 6.25전쟁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나라는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독일 등이다. 대한간호협회는 8월 4일 덴마크 주한대사관을 방문해 감사패를 전달할 예정이다.
□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 '노르매쉬'
[사진=주한노르웨이대사관]
노르웨이는 6·25전쟁 당시 유엔이 의료지원부대를 요청하자 육군 이동외과병원 노르매쉬(NORMASH·Norwegian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를 파견했다.
의무 및 행정요원 83명으로 구성된 60병상 규모의 노르매쉬는 1951년 7월 19일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1954년 11월 10일까지 한국에 남아 활약했으며, 군인과 민간인 환자 9만명 이상을 치료했다. 처음에는 의정부에 위치했으며 이후 좀더 북쪽으로 이동해 동두천에 자리를 잡았다. 총 623명을 파견했으며, 이중 여자간호사가 111명, 남자간호사가 22명, 의사가 80명이었다.
노르매쉬의 환자들은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해 이송된 군인들이었다. 환자들은 구급차나 헬리콥터로 이송됐는데, 이는 당시 혁신에 가까웠다. 환자들은 3일 동안 머물다가 새로 오는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후송병원으로 이송됐다. 부상병들이 끊임없이 병원으로 도착하는 아주 바쁜 날에는 하루에 64건에 달하는 수술이 이뤄지기도 했다.
군병원이었지만 정전 이후에는 많은 민간인들을 진료하기도 했다. 정전 이후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와 한국 정부가 함께 세운 국립의료원(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1958년부터 1968년까지 139명의 노르웨이인들이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