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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이용후기

확실한 나의 소명

  • 2020.06.09
  • 작성자 : 중앙센터
  • 조회수 : 1356
이 글은 대한간호협회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에서 진행한 〈2019 프로그램 참여후기 공모전〉의 수상작으로, 최소한의 윤문·검수를 거쳐 발행합니다.
소중한 경험을 나누어주신 조윤하 선생님, 고맙습니다.

 

마음 따뜻한 간호사를 꿈꾸다

저는 심장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7개월 차 간호사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한 환자를 보내고 새로운 환자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새내기입니다. 아픈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고 그들의 그늘진 얼굴에 환한 미소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원해서 온 중환자실은 학생 때 보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환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함께 이겨낼 수 있는 동반자가 되기에 간호사의 현실은 역부족이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에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는 데에 힘쓰다 보니, 어느새 환자의 감정과 고통에 다가가기보다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내기만을 기도하며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완벽한 간호사가 될 날은 그저 먼 이야기일 뿐, ‘도대체 내가 잘하는 게 있긴 한 걸까? 학교에서 4년 동안 뭘 배운 거지?’라는 생각에 ‘이 길이 맞는 걸까?’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차지 선생님의 권유로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즐거움을 준 ‘신규간호사 힐링 프로그램’

처음에는 너무 낯설고 어색했지만, 참가자 모두가 간호사라는 공통점 덕에 이내 편안해졌습니다. 그곳에서 본 서대문 형무소의 모습은 놀라웠습니다. 유명 독립운동가 남편을 위해 헌신하며 내조하는 역할에 갇히지 않고 간우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만세 운동을 주도한 박자혜 간호사부터 노순경, 김순호 간호사까지 힘들었던 과거에도 주체적으로 독립운동을 한 간호사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치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여자의 활약이 많이 드러날 수 없었던 시대에도 당당하게 이름을 알린 간호사들을 보면서 직업에 대한 자긍심도 더 커졌습니다. 간호사로서 양극화된 대우를 받으며 어딘지 모르게 주눅들어 있었는데,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선 현재 상황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일어서기 위해 먼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간호사는 참 외로운 직업인 것 같습니다. 독립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많고, 생명을 다루니 그에 따르는 책임도 크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사적인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하루 업무를 마감하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 됩니다. 일과 집만 반복되다 보니 새로운 시도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주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규간호사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정말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마음의 벽을 허물며 일상 속에서 새로운 관계가 주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같은 병원의 다른 부서원들과 만나 병원 내에서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을 공유할 수 있었고 각각의 부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색다른 경험이 되었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들과 뜻이 잘 맞아 프로그램이 끝난 지금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면서 우정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새로운 인연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진행해주신 선생님들입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임원으로 몇 년간 활동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를 책임지고 프로그램을 이끌어 주시는 분들의 모습이 눈에 자꾸만 들어왔습니다. 더운 날씨에 땀 흘리시며 참여자들이 혹여나 불편해하진 않을까 걱정해주신 덕분에 편안하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선임이라고 하면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 해도 다가가기 어려운 선이 있게 마련인데, 말 한마디 한마디에 애정을 담아주셨고 온전하게 저희를 위해서 뛰고 계시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과장이라 느끼실까 봐 표현하기 조심스럽지만, 선생님들께서 웃어주시면서 저희에게 건네주신 말 한마디, 미소들이 아직 제 마음에 따뜻하게 남아 있어 감사 인사를 다시 한번 드리고 싶습니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고 언제든 힘들면 찾아가고 싶은 장소 중 한 곳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힘든 일이 생기면 꼭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연단에서 발표 중인 조윤하 간호사

확실한 나의 소명, 흔들리지 않는 신념

프로그램 중에서는 대한간호협회 신경림 회장님과 김창옥 강사님의 강연이 기억에 남습니다. 먼저 김창옥 강사님의 <그래 너 여기까지 잘 왔다> 는 유쾌함을 넘어서 내적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연의 메시지는 “너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힘들어.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야” 대신에 “그래, 솔직히 조금은 힘들었다. 그런데 넌 잘하고 있다. 괜찮아”라고 다른 관점에서 말해 주어 울림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법도 제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포도를 키우신다는 교수님은 포도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신다고 합니다. 저도 프로그램이 끝난 날 집에 오자마자 창고에 숨겨두었던 스케치북과 물감을 꺼냈습니다. 아주 느리지만, 병원에서 있었던 장면들을 조금씩 그려보면서 저만의 색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경림 회장님의 강연은 간호사로서의 확신을 얻을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간호사의 권익 향상을 위한 입법 통과를 목표로 직접 발로 뛰시는 열정도 존경스러웠지만, 대한간호협회에서 추구하는 가치관이 인상 깊었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고 공정하자!” 물론 이 말이 어디에나 적용되어야 하는 당연한 말이지만, 훗날 목표의 방향을 잃었을 때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에서 간호 관리학을 배우던 시절, 교수님들께서는 똑같은 일을 해도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흔들림이 없고, 흔들린다고 하더라도 방향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저에게도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목표가 선명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반드시’ 잘 해내되, ‘반듯이’ 해내자” 입니다. 이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 번째,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행동하기. 두 번째, 절차를 생략하지 않기. 세 번째, 다시 한번 확인하기입니다. 저는 환자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환자의 표정과 행동을 살피면서 정서적인 면까지 채워주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짧지만 강렬한 문구를 되새기며 오늘도 전 힘차게 출근을 합니다. 확실한 나의 소명,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지니고... ‘반드시, 반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