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8년의 경력단절에서 코로나19 최전방 지원까지
- 2020.07.20
- 작성자 : 중앙센터
- 조회수 : 1667
RNJOB (이하 R)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강현숙 (이하 강) 네, 저는 2016년에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이하 센터)에서 유휴간호사 재취업교육을 받고 대구의 죽전통증마취의학과의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강현숙입니다.
리모델링 개원 준비에 한창인 병원에서의 강현숙 선생님
R 맨 처음 간호 커리어를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어떻게 그만두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강 고등학교 때부터 희망 직업란에 늘 간호사를 적을만큼 간호사가 꿈이었어요. 간호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안동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10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큰아이가 2살 때, 남편이 대구에 자리를 잡게 되어 저도 일을 그만두고 대구로 오면서 18년 정도 경력단절이 되었어요. 더 일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R 경력이 단절된 18년 정도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강 아이 둘 키우고 나니 50대가 되어있었어요. 눈 뜨고부터 잘 때까지 오로지 애들 위주로 시간이 돌아갔죠. 바쁠 때는 모르다가 한 번씩 내 생활이 왜 이렇지 싶더라고요. 좀 우울해서 취미생활도 많이 했어요. 적십자 봉사활동도 하게 되면서 편입으로 사회복지사 공부를 마치기도 했어요.
R 아주 열심히, 누구보다 바쁘게 지내오신 것 같은데요. 다시 간호사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으셨나요? 어떻게 센터와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강 용기가 안 생겼던 게, 병원에 전산시스템이 도입되는 무렵에 제가 병원을 그만뒀어요. 그래서 전산을 배우지 못했고, 저희 세대가 컴퓨터랑 멀잖아요. 간호일 자체보다 그런 시스템 적응이 두려웠어요. 그러다 현직에서 오래 근무한 간호부장 친구가 센터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전산에 관해서도 교육해준다고 가볼 것을 권유하더라고요. 그게 2016년 10월 정도였습니다.
R 센터에서 어떤 교육을 받으셨나요? 배워보시니 어떠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강 기본 간호부터 시작해서 임상에 필요한 것들, 신입생 때 배우던 모든 것을 다시 한번 배웠어요. 두려워하던 전산도 배웠고요. 역시 전산이 제일 힘들었어요. 그래도 어느 정도 기본을 배우고 실무에서 하다 보니 늘더라고요. 제가 속한 병원은 개인병원이지만 RN(Registerd Nurse, 공인 등록 간호사)이 한 분 계세요. 선생님께 많이 배웠죠. 생각보다는 할 만 했습니다.
R 센터 교육의 좋은 점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강 당시 교육을 진행한 분들이 대부분 현직 수간호사 선생님들이셔서 실무 위주로 배울 수 있던 점이 가장 좋았어요. 교육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었고요. 교육생들은 대부분 저와 처지가 비슷해서 서로 위로와 힘이 됐어요. 취업 연계도 센터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밴드를 통해 취업 관련 공지를 공유해주시기도 하고, 그걸로 지원도 하고요. 지금까지도 밴드에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R 현재 통증의학과의원에서 근무하시는데요. 병원에서 어떤 일을 주로 담당하시나요?
강 개인병원은 간호사가 보조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RN보다는 AN(Assistant Nurse, 간호조무사)이 많이 계신데, 저희는 영양에 관한 것이나 병에 대한 설명 등 각종 상담을 간호사에게 맡기는 편이에요. 종합병원보다 개인병원에서는 환자들이 궁금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원장님이 많은 시간 1:1로 설명하기도 부족하고요. 그걸 저, 그리고 같이 근무하는 간호사 2명이 하고 있어요. 이런 서비스에 대한 환자분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입니다.
강현숙 선생님
R 이제 코로나19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들면서 의료지원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과정으로 지원하게 되신 건가요?
강 제가 적십자 봉사활동을 15년 했어요. 코로나19가 생기고 적십자에서 만약을 위해 의료인들을 전수조사하더라고요. 이름을 올려둔 상태였는데, 좀 더 먼저 갈 방법이 없을까 싶어서 센터에 전화를 했어요.
마침 인력이 부족하다며 중수본(중앙사고수습본부, 간호인력 파견을 담당함)에 이름을 올려두겠다 하시더라고요. 곧 연락이 와서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병동 근무자가 필요하니 그쪽으로 출근하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첫 출근이 2020년 2월 25일일 거예요. (참고: 대구의 일일 확진자가 가장 많았던 날은 2020년 2월 29일로, 813명을 기록했다.)
R 지원할 당시 심정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강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가게 되었다고 하니 봉사단체마저 연락 와서 의료봉사하지 말고 다른 거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었어요. (웃음) 막상 근무 전날이 되니 두렵더라고요. ‘감염되지는 않을까?’, ‘병동 근무는 오래도록 안 했는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R 병동이나 환자 규모가 어느 정도였나요?
강 제가 갔을 때는 이미 대구에 확진자가 넘쳐나기 시작할 때여서 경증환자였지만 하루에 100명 가까이 입원하셨어요. 정신을 못 차렸어요.
R 방호복부터가 너무 큰 난관이실 것 같아요.
강 아… 방호복… 출근 전날 방호복 교육을 받았어요. 그때야 에어컨도 있고 천천히 입고 벗으니까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막상 첫 출근날 컨테이너에서 방호복 갈아입고 나왔는데, 앞이 안 보이는 거예요. 추운데도 땀이 금방 줄줄 흘렀어요. 아직 2월이라 병원 안은 온도를 높힌 상태였어요. 습기가 차서 서로 눈이 안 보이더라고요. 땀이 흐르는데 손으로 닦을 수가 없고, 너무 따갑고... 첫날 들어간 다섯 명이 창문을 보면서 ‘저기로 뛰어내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일주일 정도는 정말 힘들었는데, 조금 적응이 된다고 해야 하나... 땀이 나면 나는대로, 앞이 안 보이면 안 보이는대로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방호복 때문에 일이 다 느려지고 걸음도 어색했어요. 특히 장갑을 두 겹이나 껴서 촉진하거나 혈관을 찾을 때 느낌이 없었어요. 그게 상당히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2주 근무하고 2주를 연장해서 더 하게 되었어요.
2020년 2월,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으로 코로나19 지원을 나간 강현숙 선생님
R 그렇게까지 하신 원동력이 뭔가요?
강 함께 근무하신 분들이에요. 본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도 계셨겠지만, 인력이 너무 모자라니까 수도권 국공립병원에서 강제로 파견되어 오시기도 했거든요. 처음 갔을 때 대구 내에서 자진해서 오신 분은 저와 저보다 연세가 많으신 한 분 밖에 없었어요. 너무 부끄러웠어요. 대구 사람이니까 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R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인지 궁금합니다.
강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요. 치료약이 있는 것도 아니니 열 나는 분들에게 해열제나 아이스팩을 드리거나 하는 지원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간호사지만 저희만 병동에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밥 드리는 것부터 청소까지 다 해야 했어요. 한 병동에 누수가 생겨서 물이 꽉 찬 적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없으니 시트로 물 막고 청소하는 일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R 가족들과 거리를 두어야 하잖아요? 생활은 어떻게 하셨나요?
강 집에 자녀가 있으면 집에 못 가는 게 원칙이었어요. 대구시에서 숙소를 마련해줘서 셔틀을 타고 왔다갔다 하다보니 가족들은 영상 통화로만 연락하고 한 달을 못 봤어요. 그래도 다른 병원 선생님들 얘기 들어보면 저희는 편했던 것 같아요. 어떤 병원에서는 장례식장에서 주무신 계신 분들도 계셨고, 수도권에서 파견된 선생님들은 일부 숙박업소에서 받아주지 않거나 폭리를 취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R 어떤 감정이 들 때가 가장 힘드셨어요?
강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저희에게 영웅, 전사라는 말을 하셨잖아요. 근데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현실적일 것들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계약상의 근무 조건이 적용되지 않거나 계속 바뀌는 경우도 있었어요. 먹는 거 하나에서도 서러움을 받는 선생님들도 계셨고요. ‘우리는 영웅이고 전사지만, 우리를 누가 도와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사명감으로 현장에 왔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소모품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열악한 환경과 처우가 지속되면, 과연 한번 경험한 사람들이 나중에도 자원을 할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R 꾸준한 봉사도, 재취업도, 코로나19 지원도 모두 훌륭하게 해오셨는데요. 유휴간호사 여러분께 응원의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강 저는 집을 벗어나서 내 일이 있다는 게 행복하더라고요. 유휴간호사들이 저랑 비슷한 나이대가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나의 가능성을 신체 나이로 규정하지 말고, 내가 가치있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먼저 인식하면 좋겠어요. 용기 내기가, 결심하기가 어려워서 재취업을 두려워 하시는 분들은 센터의 도움을 받아보세요. 어느새 내 안에 건강한 자존감이 생길 겁니다.
R 마지막으로,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를 다른 간호사들에게 한 마디로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강 막연히 대한간호협회만 있다는 걸 알았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는 제게 센터는 시작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는 경력단절 간호사의 희망의 길잡이다.”